박해가 아닌 재난의 시기입니다 | 황현수 | 2021-0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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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고민으로 인해 숨이 가빠지고, 잠을 못 이룰 때가 있습니다. 바로 박해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박해의 순간에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나는 배교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전체 기독교 역사가 아닌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만 보아도 가슴 아픈 박해의 순간들이 정말 많이 존재합니다. 일제 시대 믿음을 지키고자 열악한 감옥에 수감되어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한 믿음의 선배님들, 공산치하에서 믿음으로 인해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 심한 고난을 당하신 선배님들을 생각할수록 경외심이 밀려옵니다. 또한 지금도 북한 정권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고난당하고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매질도 견디기 힘든데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가 서있을 수만 있는 감옥의 고문, 손발톱이 모조리 뽑히는 고문, 거꾸로 매달려 고춧가루가 섬김 물을 강제로 들이켜야 하는 고문 등, 정말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믿음으로 인해, 복음으로 인해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박해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재난입니다. 어떤 이의 말처럼 이 재난의 이유가 하나님의 징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인간이 자연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한 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확실할 것입니다. 그리고 벌써 1년이 되어버린 코로나19의 어려움 가운데 한국 교회 또한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근간이라도 믿어오고 가르쳐왔던 현장의 예배를 마음껏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 세계적인, 그리고 국가적인 재난의 상황을 모두 함께, 가능한 속히 타개하기 위한 우리 신앙인들의 책임 있는 마땅한 행동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앙인이라고 해서 이 땅의 국민이 아닌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에 재난의 시기에 양보하며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로마 제국에 큰 역병이 돌아 하루에 수천 명씩 죽어 나갈 때에 그들의 귀족들은 로마시대를 떠나기 바빴습니다. 반면 눅눅한 카타콤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 드리던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을 피해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병든 자를 보살펴주며,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그들은 재난을 오히려 복음의 빛을 나타내는 기회로 선용한 것입니다. 선한 행실을 통해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코로나 19는 재난입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위해 현장 예배와 모임을 금지하고,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기독교 핍박이나 교회 핍박이 아닌 우리 신앙인의 마땅한 자세에 대한 공동체의 요청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이 우리에게서 보기 원하는 진짜 책임감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뉴스에서 감염의 온상지로 교회를 언급하는 것은 사회주의 색깔을 가진 정부여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 공동체의 재난에 대한 건강하고 올바르지 못한 생각으로 가졌기에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결과라고 봄이 더 타당합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위해 일시적으로 현장 예배를 금지하는 것이 박해요 핍박이라고요? 진짜 박해를 당해 보셨습니까?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손발톱이 다 뽑히고, 꼬챙이로 관통 당하는 것이 진짜 박해이지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진짜 박해의 시기에 제가 얼마나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정말 두려워서 믿음을 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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