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 황현수 | 2020-08-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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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율법사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를 돌아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려하지 말고 복음으로 살라'는 교훈입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반쯤 죽어 있습니다. 그 때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봅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다른 길로 피해갑니다. 레위인도 동일하게 피해갑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율법의 정결예식에 맞지 않아서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의 형식을 지켰을지 몰라도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긍휼은 어긴 것입니다. 오직 사마리아인-불신자-만이 율법의 정신을 지켰고 복음으로 산 것입니다.
이 비유는 지금 현 상황에서의 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코로너19의 2차 대유행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소상공인들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 1기로 고생했고, 장마로 고생했는데 이제 다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솔직히 교회는 온라인으로라도 헌금을 받지만, 소상공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몇 교회와 목회자들은 예배를 사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봐야 합니다. 예배를 사수해야 한다는 모습이 강도만나 신음하는 자를 피해 돌아간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에배의 형식은 있으나, 예배의 정신은 없는 종교인의 모습아닙니까? 복음을 죽어라 말로 전하지만, 정작 복음으로 살지 않는 종교인들 아닙니까?
예배는 우리 성도들에게 생명입니다. 이에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배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앞에서도 신앙을 지켰듯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의 위협앞에서도 신앙을 지켰듯이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려움은 교회만이, 성도들만이 겪는 핍박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질병통제를 위한 협조'를 예배를 금지하고 신앙을 핍박하는 것으로 왜곡하여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핍박입니까? 이것이 박해입니까?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비록 현장의 예배가 아니기에 불편함이 있고, 하나님께 왠지모를 송구함이 있어도 우리 하나님은 그 어느곳에나 계시는 분 아니십니까? 만일 현장의 예배만이 예배라면 북한과 중국에서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가정, 동굴)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의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지, 교회건물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 건물이라는 형식또한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2주간 온라인으로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 받으시는 예배가 전혀 아니라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솔직히 목회자 생각에 예배가 아니지 하나님 생각에는 그것도 흠향하시는 예배일것입니다.
고속도로에 이런 문구가 들어오더군요. '2주 안봤다고 멀어지면 친구도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문구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2주 온라인 예배 드렸다고 우리를 멀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또한 '2주 온라인 예배 드렸다고 교회에서 멀어지면 성도도 아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입니까? 아니면 선한 사마리안인입니까? 복음을 말로 전하려하지 말고, 복음으로 사십시오.
(눅10:36~37)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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