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저도 잘 압니다'라고 말했는가? | 황현수 | 2021-03-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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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논문을 마치고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는 저는 최근 한 제과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드리고(인도하고) 6시30분에 출근을 합니다. 7시쯤 공장에 도착하면 옷을 갈아입고 7시 30분부터 과자 박스들을 포장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쉽게 말하던 공돌이가 된 것이지요. 위생을 중시하는 업체이고, 코로나19로 인해 위생이 더 강화되어 전신 방진복을 입고, 속 두건과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쓰면 안경과 눈만 간신히 보일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저 남녀의 구분, 키가 좀 큰 사람, 좀 작은 사람, 좀 마른 사람, 좀 통통한 사람 정도로 구분될 뿐입니다. 이에 일부러 묻지않는한 사회에서 뭘하던 사람인지 전혀 알 길이 없고 사실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저씨' 아니면 '아줌마(혹은 언니)'로 불릴 뿐입니다. 전에 사장이었건 목회자였건, 학력이 초졸이건 저처럼 박사학위를 받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곳 현장에서는 그저 일당을 받는 노동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공장 알바는 생각보다 훨씬 더 힘이 듭니다. 특히 남자들은 더 무거운 일에 배정받기에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온몸이 아프기 일쑤입니다. 무엇보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9시간을 거의 내내 서서 일한다는 것과 동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쉴새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 씨름을 하며 무한 반복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또한 알바이기에 오늘 내가 한 일과 내일 할 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이 매번 다르기에, 매일 신참의 자세로 새로운 일을 배워야하는 애로사항이 존재합니다.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작업현장에서는 그저 아무개 씨나, 아저씨입니다. 그러다보니 새파랗게 젋은 정규직 직원들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일상입니다. 대충보면 20대 초중반의 자매들인데 저 뿐만 아니라 50대 중반 이상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에게 거의 반은 반말조로 소리지르고 명령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개개인의 인격보다는 생산량이 중요한 공장인지라 또한 그리 안하면 자신들이 무시당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한다고 나름 생각하며 이해를 하고 넘어갑니다.
물론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분명 저들(정규직)중, 적어도 15%이상은 교회 청년들일텐데... 그리고 저들이 교회 교역자들에게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을텐데..." "내가 박사논문까지 쓰고 왜 기껏해야 고졸인 아이들에게 왜 이런 취급을 받나?"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단 하루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 작업현장은 오직 생산량과 하루의 일당이 가장 중요시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후 다섯 시에 포도원에 채용된 일꾼처럼 그저 하루에 필요한 한 데나리온(현재 우리 돈으로 하루 85,000원 정도) 만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말해 왔고, 저 또한 수없이 말했던 말이 이것입니다. "성도님들, 저도 밖에서 다양한 일을 해보았습니다. 이에 성도님들이 아픔을 조금은 압니다." "성도님들, 십일조와 헌금 쉽지 않지요? 그런데 저도 일해보았습니다. 마음 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성도님들, 힘드셔도 주중 예배, 교회 행사, 그리고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세요. 저도 일해보아서 힘든것 압니다"
그런데 "나도 잘 압니다" 적어도 "나도 어느 정도는 성도님들의 삶을 압니다"라고 말했던 제 자신이 얼마나 유치했고 무모했고 배려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얼마나 교만했었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미국 동문들이 힘들었던 유학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생활비로 일해 정신없던 투잡, 쓰리잡의 이야기를 합니다. 맞습니다. 쉽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의 일상은 매일이 거친 광야입니다. 적어도 목회자들은 '전도사님' 혹은 '목사님'이란 호칭을 어느 교회의 성도인 사장님들에게도 받아가며 일을 했습니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의 존대는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한 평생 일이 아니기에 버티고 넘어가면 되었습니다. 반면 성도님들은 그런것을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20~30대와 40중반이후의 체력은 전혀 다릅니다. 이에 "나도 잘 압니다"라는 말은 너무나 교만한 말일 수 있습니다.
며칠 전 함께 땅콩 샌드 박스를 포장하던 아주머니께서(50대중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저씨, 이곳에서는 자존심 세우면 아무것도 못해요. 여기 한 때는 다들 잘나가던 사람들이예요." 그러시고는 슬쩍 웃으시며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저도 한 때 잘나갔어요. 그리고 저는 이런 힘든일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아요." 집에 돌아오면 샤워를 한 후 지친 몸이지만 성경을 읽고 개인 기도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아닌 왕자의 신분에서 미디안 양치기로 전락한 모세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술에 뛰어났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는 한낱 생초짜였을 뿐입니다. 이에 모세 또한 선배 양치기들에게 많은 무시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왕자였던 자신의 신분을 쉽게 말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새로운 사역(사역지)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중입니다. 그전에 저만의 미디안 광야를 체험하며 조금이나마 교만한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이것 또한 감사제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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