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 황현수 | 2021-0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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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솝우화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이야기는 뛰어난 재능에 자만하여 도중에 잠들어 버린 토끼의 모습과 비록 재능은 부족하나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경주에서 승리한 거북이의 모습을 통한 교훈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 자체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토끼와 거북이는 '쓸모없는 경주'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토끼와 거북이에게 각각 다른 은혜를 주셨건만 괜히 서로 비교하며 시간과 힘을 허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토끼에게 빠른 발을 주셨고, 이를 통해 빨리 달려나갈 때에 느끼는 희열과 바람의 시원함이라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반면, 거북이에게는 비록 빠른 발을 주시지 않으셨지만 누구보다 느리게 걸음으로서 길가의 꽃들과 곤충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 아니 '나에게 주신 나만의 은혜의 선물'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두 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과거입니다. 그는 복음의 핍박자요 훼방꾼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육신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경험, 즉 객관적인 사도로서의 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도 바울의 대적자들에게 좋은 훼방의 무기가 되었고 바울은 이로 인해 적잖은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음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서 3장 7절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3:7)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바로 이것입니다. 당시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기둥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갈2:9). 그런데 바울은 그들과 자신의 처지와 은사를 비교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바울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을 좋은 가문에, 키도 크고, 인물로 훤칠했던 소위 좋은 스펙의 엄친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하염없이 무너져만 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듯이 사울 왕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지 않고, 소년 목동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질투와 시기라고 말합니다.
역사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참 훌륭한 음악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아닌 모짜르트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집중하다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믿으실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페북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인스타그램은 계정조차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매체들을 통해 선한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꾸만 다른 목회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여 부러워하고, 때로는 하나님은 원망하고, 때로는 시기의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귀합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왠지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혜가 더 커보이고 좋아보입니다.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처럼, 다윗을 시기한 사울 왕처럼, 모짜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리처럼 스스로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말라가는 것입니다.
최근 바울의 이 고백이 저의 가슴에 '잘 박힌 못'(전12:11)처럼 새겨졌습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 은혜의 선물로 인하여 나는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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