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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맑은 물의 함정 황현수 20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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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 시대 초엽, ‘반초’라는 무장이 있었습니다. 반초는 거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습니다. 그 결과 그는 4대 황제 때인 영원4년에 서역도호부의 도호가 되었고 영원 14년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후임자로 임명된 ‘임상’이란 자가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반초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살지 않는 법’이라네. 그러니 사소한 일을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그런데 엄청난 대답을 기대했던 임상은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 황제 때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배반했으며, 그가 맡았던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맑은 것은 좋은 것이고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성품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이 맑음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면 그 맑음은 오히려 대인관계를 망쳐버리는 덫이 되고 독이 되어 버립니다. 

 

  짧은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것은 목회자가 너무 맑음에만 매이면 모두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떠납니다. “목사님은 참 진실하고 신실하고 맑아요. 그런데 그래서 함께 하기에 힘들어요. 잘 계세요” 목회자가 너무 맑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쩌면 그 말은 너무 ‘성경적인’ 원리원칙만 내세워 포용력이 떨어진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성도가 모이지를 않습니다. 맑음을 중요시하던 바리새인들 주변이 아닌, 세리와 창기들을 포용하던 예수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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